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돌궐족

ㅁı녀오r ○ㅑ수 2016. 6. 5. 02:36

돌궐족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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요약
6세기 중엽부터 약 200년 동안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한 튀르크계 민족.

튀르크(Türk)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, 처음에는 철륵(:예니세이강 상류, 바이칼호 지방에 살았던 튀르크 종족)의 한 부족으로서

알타이산맥 방면에서 유연(:몽골지방의 고대 유목민족)에 소속되어 있었다.

그 중 한 씨족인 아사나씨()의 족장 토문(:만인의 이라는 뜻)이 유연·철륵을 격파하고 독립하여 일리가한[]이라 칭하였다(552).

이 무렵부터 그의 아우 디자불로스는 서방으로 진출하였고, 3대 목간가한() 때 사산왕조 페르시아와 협력하여 에프탈을 멸망시켰다(563∼567).

 그 결과 돌궐은 동쪽으로는 중국 둥베이[:만주],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에까지 세력이 미쳤으나

동족간의 다툼으로 583년 분열하여 동돌궐은 몽골고원, 서돌궐은 중앙아시아를 지배하였다.

동돌궐은 수()나라 말기에서 당()나라 초기에 걸친 중국 내부의 혼란을 틈타 중앙집권화를 도모하여 그 세력이 강대해졌으나,

당나라의 공격과 철륵 제부족의 독립 등으로 630년 멸망하고 당나라의 간접 지배를 받았다.

그러나 682년 다시 몽골고원에 독립국가를 세워 카파간가한[] ·빌케가한[] 등이 등장하였다.

그들은 한때 중앙아시아에 원정할 만큼 세력을 떨쳤으나, 다시 동족간의 다툼으로 쇠약해져 744년 철륵의 한 부족인 위구르에게 멸망하였다. 

서돌궐은 동로마제국과 결탁하여 사산왕조 페르시아를 토벌하기도 하였으나 둘로 분열하였다.

당나라는 이 틈을 이용하여 이주(:하미)와 서주(西:투르판) 등의 주현()을 설치하였다.

그 후 서돌궐은 한때 통일을 이룩하였으나 당은 657년 이를 토벌하고 2명의 가한을 두어 통제하였다. 7

세기 말 돌기시()가 일어나 이 두 가한을 추방함으로써 서돌궐은 멸망하였다.

돌궐의 국가는 일(il)이라 부르며 가한() 밑에 소가한()과 야부그[] ·샤드[] 등의 제후가 일종의 봉건영지를 소유하여 영내의 모든 부족을 통치하였다.

 이들은 ‘베크[]’라는 지배계층을 구성하였고, 일반 민중은 ‘부둔’이라고 하였다.

베크들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북아시아의 유목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문자를 사용하여

 자신들의 기록, 즉 돌궐비문을 남겼다. 일반적으로 원시적인 샤머니즘을 믿고 있으나, 한때 불교가 가한을 중심으로 한 상층계급에서 유행하였다.

[네이버 지식백과] 돌궐족 [突厥族] (두산백과)